저자는 여행을 가면 꼭 그곳에 묻힌 예술가나 철학자들의 무덤을 찾아다닌다. 헨릭 입센, 사르트르, 고흐, 나쓰메 소세키, 윤동주, 신해철. 오래 전 죽었거나, 살아 있을 때는 도저히 가까이 다가갈 수 없던 사람들. 그들의 작품은 여전히 불멸의 가치를 내뿜고 있지만 현실의 그들은 그저 자기 몸만 한 무덤에 가만히 잠들어 있을 뿐이다. 위대한 인간의 무덤 앞에 서면 인간에겐 죽음만이 명백하고 삶은 오히려 꿈인 듯 흐릿해진다. 누군가에게 악취미로 보일 수도 있는 남의 무덤을 찾아다니는 여행은 위대한 작품을 사소한 일상 안에서 만나보는 과정이었다. 『무덤 건너뛰기』는 신앙 없는 순례, 적당히 타협적이고 다분히 자조적이며 절대적인 자기 불신에 빠져 있는 저자가 무덤을 찾아다니며 자신의 삶은 어디까지 저들과 가까워질 수 있는지 자문하는 전례 없는 순례기이다.
신라 불교의 기틀을 세운 승려 자장, 비운의 삶을 살다 간 천재 시인 허난설헌과 역적으로 극형을 당한 『홍길동전』의 작가 허균, 그리고 조선 최초의 가톨릭 신부 김대건. 불교와 도교, 가톨릭을 넘나드는 이 여정은 짧고 강렬한 물음을 던진다. 나는 이들처럼 확신에 찬 삶을 살 수 있을까? 인간은 꼭 확신과 목적을 갖고 살아야 하는 걸까? 그저 들풀처럼 살다 가면 안 되는 것일까? 이 무덤 순례를 마치고 나면 나는 나를 어디까지 파고들어 갈 수 있을까?